해리를 보기 전에.
예전에 영화화된 도가니를 보고 와서 친구가,
'슬픈 영화였다. 내가 과연 그 상황이었다면 거기에 맞설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어서'라고 했었다.
처해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이게 옳다, 저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. 다만 나 역시 망설이지 않을 자신이 없다.
현실이 소설같을때, 그것에 직면하기보다는 회피하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 훨씬 쉽다. 심각한 뉴스를 본 후에 동물 사진이나 즐거운 이야기를 읽으려는 경향처럼.
다만 문제가 나를 삼켜버리기 전에-
'세상을 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'고 동참할 수 있을까.
'힘'을 가지는 것은 '상대가 나와 동등한 존재'라는 전제가 흐려지게 한다.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, 싶은 것도 어쩌면 나에게는 그런 '힘'이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. 가장 위대한 혁명가가 바로 다음날 가장 지독한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법.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, 라는 말은 틀렸다. 사람은 그게 누구였던, 뭐든지 될 수 있다. 성인이든, 괴물이든.